불꽃 수사의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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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도선경가 (鬱島仙境歌) - 울릉도 중개척기를 노래한 가사 작품(1906)
* 증조부님의 가사 작품 


저의 조부께서 울릉도에 들어 오셔서(1894년), 1906년 지으신 가사 작품인데, 경북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신 서원섭 교수님께서 울릉도에 오셔서 채록하시고, 논문으로 발표하신 내용입니다. 조부님 작품의 음수률을 송강 정철의 것과 비교하면서 그 우수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박순진(朴淳鎭)의 子 박팔수(朴八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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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인터넷 '파란'과 '파스'의 백과사전에서)

1906년 박시옹이 울릉도 개척 때의 생활상과 풍물을 소재로 지은 가사. 1878년의 울릉도 개척령 뒤 울릉도 중개척기에 해당하는 1894년 울릉도에 들어간 지은이가 그곳에서 두 아들을 얻은 뒤 지은 것이다. 장남 순진(淳鎭)의 집에서 발굴 당시 작품의 제명(題名)이 없는 것을 발굴자 서원섭(徐元燮)이 이름을 붙였다.

내용은 청일전쟁과 동학농민운동으로 혼란한 중에 고향을 떠나 울릉도에 입도하는 지은이의 심정과 항해 과정, 개척민들의 어려운 생활과 상부상조, 일본과의 물물교환, 뛰어난 자연풍물,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 등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간결한 문체와 정연한 형식을 갖춘 비교적 짧은 작품이지만 《정처사술회가(鄭處士述懷歌)》와 함께 울릉도 개척기의 정황을 표현한 희귀한 작품이다. 섬을 소재로 한 작품이 드문 가사문학에서 한국 3대 도서의 하나인 울릉도를 소재로 지은 작품이라는 데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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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도선경가 (鬱島仙境歌)

서원섭, “울도선경가고”, [논문집] 13, 경북대, 1969.

1, 머리말

여기 소개 발표하는 가사는 필자가 1967년 여름에 울릉도 민요(1)를 수집키 위해서 들어 갔을 때 얻은 것이다. 민요 뿐만 아니라 국문학과 관계되는 자료는 다 모아 보겠다는 것이 필자이 욕심이고 보매, 가는 곳마다 이 방면 자료를 수소문하던 차 서면 통구미에서 정처사(鄭處士) 술회가(述懷歌)(2)를 얻은데 힘입어 안내하는 동장
박귀수(朴龜洙) 에게 가사를 간직하고 있는 집이 없는가고 물었더니 자기 할아버지가 중개척(中開拓) 때에 들어와서 지은 가사가 있는데 , 이를 10여년 전에 자신이 베낀 필사(筆寫)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얻어 보니 간결한 문체에 그 형식이 너무나 잘 다듬어져 있기에 원본을 구하기를 원했더니 씨의 큰집에 있다고 하면서 자기 형님에게 연락을 해 주겠다고 했다. 십여일 후에 천부동(天府洞) 에 가서
박영수(朴永洙) 씨를 찾아 갔더니 동생에게 연락을 받았다면서 다음날 본천부동(本天府洞) 에 계시는 부친댁에 안내하겠다고 한다.

이튿날 본집에 가니
박순진(朴淳鎭) 옹의 말씀이 원본은 잃어버린지 오래라고 하시면서 내보이는 가사를 읽어 보고서는 약간의 오사(誤寫) 가 있다고 하시면서 그 잘못된 곳을 일일이 바로 잡아 주셨다. 여기 발표하는 가사는 박옹의 교정본(敎正本) 임과, 또 원래 이 가사에는 제명(題名)이 없었기 때문에 필자가 울도 선경가(鬱島仙境歌) 라는 이름을 붙였음을 밝혀둔다.

2, 지 은 이

박시옹은 자(字)를 형오(衡五)라 하고, 현복(玄復)공을 아버지로, 이득상(李得祥)의 딸 여주(麗州) 이씨를 어머니로 하여 고종(高宗) 원년 갑자(甲子)(1864.A.D) 음력 7월 2일 울주군 농소면 창평리 송정촌(松亭村)에서 삼형제의 둘째로 태어났다.

시옹이 태어난 때는 대원군의 집권으로 쇄국정책이 시작되려는 때로 바야흐로 국가다단(國家多端)한 시기였다. 세 살 때인 병인(丙寅)(고종(高宗)3년 1866A.D)에는 천주교도의 학살로 프랑스 함정의 내공(來攻)과 미국 상선 샤만호 사건이 일어났고, 열두 살 때인 을해(乙亥)(고종12년 1875A.D) 8월에는 일본 군함 운양호를 강화도에서 포격한 사건이 일어나,  이 때문에 그 다음해 강화도에서 수호조약이 체결되었고, 열다섯살 때인
고종15년 (1878A.D)에는 울릉도의 개척령이 있었다.

열아홉 살 때에
임오군란(壬午軍亂)(1882A.D)이 일어나 정국이 극도로 혼탁해지자 이 난세를 피해 울릉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스물 한 살 되는 갑신(甲申)(고종(高宗)21년 1884 A.D)에는 울산 이씨 자중(自中)의 딸과 결혼하여 세 딸을 낳았고, 고종31년 갑오(甲午)(1894A.D) 씨의 나이 서른 한 살 때 동학난이 일어나는 등 세상이 극히 어수선하자 살기 좋다는 울릉도로 들어가 북면 천부동(天府洞)에 자리를 잡고 농사에 힘썼다.

들어간 지 7년 만인 광무(光武) 5년 신축(辛丑)(1901 A.D) 에
맏아들 순진(淳鎭)을 낳았고, 5년 뒤인 병오(丙午)(1906 A.D) 1월 27일에 용진(庸鎭)(일명: 재릉(再陵)을 낳았다. 딸만 셋을 낳다가 이 섬에 들어가 맏아들을 보고 이어 막내 아들을 또 낳자 그 기쁨을 가누지 못해서 칠 안에 이 가사를 지었던 것이다. 옹은 1947년 6월 15일 84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3)

[참고]
(1) 이 때 132편의 민요를 채록하여 그 중 일부를 발표한 바 있다. 졸고 울릉도 민요 연구 <어문학 18>1968.
(2) 원래는 초개척 때의 작품인 이 가사를 발표하고 그 다음에 중개척 때 가사인 울도 선경가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한정된 원고의 장수보다 몇 곱절이나 많은 분량이라 하는 수 없이 다른 학술지에 발표키로 한다.
(3) 밀양 박씨 대헌공파(大憲公派) 세보(世譜)와 지은이의 두 아드님(순진(淳鎭), 용진(庸鎭)옹)의 구술 자료에 의함.



3. 가사 소개

제 1 단

어와 세상(世上) 사람들아 이내말쌈 들어보소
수백다족(數百多族) 송정촌(松亭村)에
(4) 내맴이(5) 생장(生長)하야
부모(父母)에 은덕(恩德)이며 형제(兄弟)간 우애(友愛)로서
명신가절(明新佳節) 좋을때에 남녀노소(男女老少) 함께모아
희희낙낙(喜喜樂樂) 지내나서 백년(百年)을 기약터니

세생(世上)이
(6) 분분(紛紛)튼가 신맹(身命)이(7) 불행(不幸)튼가
삼십(三十)이 계오넘어 가오(甲午)
(8)을미(乙未) 당하였네
동기지정(同氣之情) 다베리고
(9) 울도(鬱島)로 들어온다

이는 본 가사의 서사(緖詞)로서 고향 송정촌에서 부모 친척들의 사랑속에 기쁜 나날을 보내면서 고향 동산에서 백년을 살아 보겠다고 다짐한 것도 잠깐 청일전쟁(淸日戰爭)과 동학란(東學亂)이 일어나 세상이 혼란해지자 신개척지 울릉도에 들어가게 된 경위를 말하고 있다.

[참고]

(4) 울주군 농소면 창평리 송정촌
(5) 내몸이의 잘못,
(6) 세상의 잘못.
(7) 신명의 잘못.
(8) 갑오의 잘못.
(9) 다버리고의 잘못.


제 2 단

만경창파(萬頃滄波) 동해변(東海邊)에 일엽선(一葉船)을 잡아타고
순풍(順風)에 돛을달어 일주야(一晝夜) 달려오니
만학천봉(萬壑千峰) 솟인 것이 이것이 울도(鬱島)로다.


일엽편주(一葉片舟)에 몸을 실고 순풍에 돛을 달고 하루 낮밤을 향해하며 울릉도에 닿았다고 하는 항해 경로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제 3 단

주희(周廻)는 일백리(一百里)나(10) 평지(平地)도 전혀없다
산을지고 집을짓고 난글비고 밭을내니
세상(世上)의 별건곤(別乾坤)이 이밖에 또있는가

마맥두태(마麥豆太)
(11)숨아내세(12) 이것을 보맹하고(13)(保命)
깍새를
(14) 잡아다가 이것을 반찬(飯饌)하니
육지(陸地)의 고양진미(膏梁珍味) 생각한들 어이하리


울릉도는 둘레가 겨우 130리가 되는 조그만한 섬인데다가 평지라고는 성인봉(聖人峰) 아래에 옛 분화구의 화구원(火口原)인 면적 50정보의 작은 분지가 있을 뿐 평지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곳 이지만 실망하지 않고 집을 짓고 밭을 일구어 감자 보리 콩 등을 심고, 깍새를 잡아 반찬을 하는 등 개척자의 꾿꾿한 생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참고]
(10) 울릉도는 둘레가 44,21Km 면 적은 72,44Km2 직경이 약 30리의 작은 섬 이다 .
(11) 감자 보리 콩.
(12) 심어 내세의 잘못.
(13) 보명하고의 잘못.
(14) 개척때 이 섬에는 깍새가 많이 있어 이를 잡아 먹었다고 한다 깍새가 얼마나 많이 있었는가 하는 것은 깍새등(깍새가 많은 등성이란 뜻)이란 지명이 있는 것으로도 알수 있다.

제 4 단

삼동(三冬)을 당하오면 나날이 풍설(風雪)이라
이웃출입(出入) 전혀막고 벌기같이 들어앉아
감자밥 무시국을 욕기복통 대로하니
우습다 우리인생 각색풍상(各色風霜) 다적는다
(15)

겨울이 되면 몇자 가 되리만큼 큰 눈이 쌓여 이웃 출입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마치 벌 모양으로 들어 앉아 봄날을 기다리며 가만히 생각하니 울릉도까지 들어오게 된 자신이 우습기까지 하다고 하였다.

[참고]
(15) 다 격는다. 다 경험한다.


제 5 단

그럭저럭 지내나서 봄날이 돌아오면
장설(壯雪)이 다녹은후 춘풍(春風)이 화창하다.
집집이 농사짓기 인생(人生)의 직업(職業)이라
호미들고 밭매기며 산에가 나물뜯기
(16)
상부모(上父母} 하처자(下妻子)도 이로서 보맹(保命)하니
(17)
재미로서 지내노니 건고(勤苦)를 피할소냐


봄이 돌아와 날씨가 따뜻하면 쌓였던 눈도 녹고 집집마다 농사에 힘쓰는 한편 산에 가서 나물을 뜯는 고달픈 삶이 계속되지만 이것이 다 처자를 부양하는 것이고 보면 고달픔도 잊을수 있다고 하였다.

[참고]
(16) 이섬의 특산물 중의 하나가 이 산나물이다 . 전호(前胡) 꼬치미 고사리 명이 삼나물 부지기초(不知饑草) 고비 곤대서리 미역초 땅두릅 등은 다른 곳에서는 맛볼수 없을 정도로 그 맛이 좋다.
(17) 보명(保命) 하니의 잘못.

제 6 단

대해중(大海中)에 오는배는 일본(日本)으로 들어온다
포백(布白)이며 각색물건(各色物件) 두태(豆太)로서 바꿔내니
이고데 사는사람 의복(衣服)이 글로난다.


개척 후에도 일본 사람들이 내왕하며 베와 여러 가지 물건들을 실고 와서는 이곳에서 나는 콩과 바꾸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제 7 단

갑신년(甲申年)(18) 개척(開拓)후에 천여(千餘)집 되었으니
해중(海中)에 솟은섬이 아매도
(19) 명지(名地)로다
산천(山川)에 있는풀이 약초(藥草)가 반이넘고
지중(地中)에 솟은섬이 물맷도
(20) 기이(奇異)하다
풍토(風土)가 순(順)하기로 인간(人間)에 병(病)이적고
육지(陸地)가 머자하니 인품(人品)도 후(厚)하더라.

고종 21년 갑신정변 의 어수선함을 피해 들어오기 시작한 가구가 이제는 천여집이 넘어 초개척 때의 어려움이란 찾아볼수 없고 산에 있는 풀은 대부분이 약초요, 풍토 기후 인심이 좋고 병이 없는 그야말로 지상낙원(地上樂園)임을 말해주고 있다.

[참고]
(18) 갑신정변(김옥균 난)이 일어난 해로 이때부터 본격적인 개척이 시작된 듯 하다.
(19) 아마도의 잘못 .
(20) 물맛도의 잘못


제 8 단
술을하야 서로청코 밥을하야 논아먹고
문학(文學)을 숭상(崇尙)하니 촌촌(村村)이 글소리라
팔도(八道)사람 모여들어 한이우지 되었이니
서로추축(追逐)
(21) 하는것이 이것도 연분(緣分)이라

팔도(八道)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한 이웃이 되어 서로 상부상조(相扶相助) 하는 한편 동리마다 서당을 차려 글 읽는 소리가 자자하다고 한 것은 바로 이곳이 Utopia임을 말해주고 있다.

[참고]
(21) 추축(追逐) : 벗 사이에 서로 왕래하여 교제함.


제 9 단

주야(晝夜)이 도는마음 환고향(還故鄕)이 원(願)이로다
풍진(風塵)도 식어지고 국태민안(國泰民安) 하신후에
남녀간(男女間) 키와내어 고향(故鄕)을 찾어가세

편안한 생활을 하면 할수록 어수선한 육지에 두고 온 부모 형제에 대한 생각은 간절한 것이었다. 언젠가 풍진(風塵)도 식어지고 나라가 편안할 때에는 장성한 아들 딸을 거느리고 고향에 가겠다는 것을 다짐하고 있다.



4. 내용
본 가사의 내용을 고찰함에는 그 문맥에 따라 편의상 9단으로 나누어 살펴 보고자 한다.
( 내용 부분은 각 단  아래에 배치하여, 뜻을 이해하기 쉽도록 배치하였다.)


5. 형식

본 가사의 형식을 보면 모두 43절 86구 635자로 짜여져 있는데 그 음수율은 다음과 같다. 3.4조 ― 53개, 4.4조 ― 33개가사의 기본 음수율이 3.4조와 4.4조라고 한다면 이 가사는 그야말로 완벽한 형식(음수율)으로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오늘날 전하는 가사 중에 그 음수율이 3.4조와 4.4조 만으로 이루어진 가사는 이 가사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이 가사의 형식(음수율)이 얼마나 잘 짜여져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기 위해서 가사 문학의 제 일인자인 송강 정철((送江鄭撤) 의 속미인곡(續美人曲)과 견주어 보기로 하겠다.

작 품

절수

구수

자수

2.3조

2.4조

3.2조

3.3조

3.4조

3.6조

4.3조

4.4조

속미인곡

48

96

670

3

12

1

14

33

1

2

30

울도선경가

43

86

635

53

33


아동지이소(我東之離騷)니. 영중지백설(漏中之白雪)이니. 겁가여공명출사표(可與孔明出師表) 백중간야(伯仲看也)겂니 하며 역대 비평가들로부터 절찬(絶讚)을 받은 바 있는
송강의 속미인곡이 2.3조, 2.4조, 3.2조, 3.3조, 3.6조, 4.3조, 4.4조, 등 8개의 음수율로 이루어 진데 비해서 본 가사는 다만 3.4조와 4.4조의 2개의 음수율 만으로 짜여졌다는 것은 이 가사의 형식(음수율)이 얼마나 우수한가를 말해주고 있다.



6. 맺는말
개척(開拓)된 지 90년도 안되었을 뿐더러 개척이래 지금까지 논밭의 부족으로 바다에만 의존해야 생활할 수 있는 형편이라 이 섬에 노래와 가사를 지어 부를 여유가 없는 탓인지 이러한 류의 작품들이 별로 없는 듯하다. 그러나 초개척기의 가사 정처사술회가(鄭處士述懷歌)와 중개척기의 본 가사를 얻을수 있었다는 것은 여간 다행한 것이 아니다. 위에서 이 가사를 살펴 본대로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 가사는 민요와는 달리 섬을 소재로 한 가사들이 별로 없는 중에 우리나라 삼대 도서의 하나인 울릉도를 소재로 해서 지었다는 점에서 크게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둘째, 이 가사는 광무(光武) 10년(1906.A.D.) 2월 2일 경에 지어진 것이다.

셋째, 본 가사를 9단으로 나누어 살펴본 바 퍽 간결한 문체로 쓰여졌을 뿐 아니라 중개척기의 사정을 잘 그려 놓고 있다.

넷째, 본 가사를 통해서 경술국치(庚戌國恥) 이전에도 일인(日人) 들이 물건들을 바꾸기 위해서 이 섬에 내왕(來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섯째, 본 가사의 음수율은 3.4조와 4.4조만으로 되어 있다.

여섯째, 송강 정철의 속미인곡과의 음수율의 대비(對比)에서 속미인곡보다, 더 잘 짜여진 가사임을 알았다.





교황님 주례의 재의 수요일 속죄 행렬과 미사

CITTA' DEL VATICANO, 7 FEB. 2008 (VIS).
Nel pomeriggio di ieri, Mercoledì delle Ceneri, giorno di inizio della Quaresima, il Santo Padre ha presieduto, nella Basilica di Santa Sabina all’Aventino, la Celebrazione Eucaristica con il rito di benedizione e di imposizione delle Ceneri.

 

  Prima della Messa, nella Chiesa di Sant’Anselmo all’Aventino, si è tenuto un momento di preghiera, seguito dalla processione penitenziale verso la Basilica di Santa Sabina, alla quale hanno preso parte i Cardinali, gli Arcivescovi, i Vescovi, i Monaci Benedettini di Sant’Anselmo, i Padri Domenicani di Santa Sabina ed alcuni fedeli.



바티칸의 소식지 내용을 대충 옮겨보면,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었던 어제 오후(2월 6일), 교황님께서는 아벤띠노 언덕에 있는 성녀 사비나 성당에서 재 축성과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과 함께 미사를 주례하셨다.

미사 전에 아벤띠노 언덕에 있는 성 안셀모 성당에서 잠시 기도하셨고, 이어 성녀 사비나 성당으로 속죄행렬을 하셨다. 추기경들과 대주교들, 주교들, 성 안셀모 수도원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 성녀 사비나 성당의 도미니꼬회 수도자들과 여러 신자들도 함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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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재의 수요일) 오후 4시경 교황님께서 안셀모 수도원에 도착하셨다.

왼쪽 검은 수도복에 십자가를 거신 분이, 전 세계 베네딕도회를 대표하는 노트겔 '수석 아빠스님'(아빠스 쁘리마스).  

그 사이에 붉은 색 추기경 복장을 하신 분은 이태리 주교회의 의장이고, 로마교구 총대리를 맡고 계신 루이니 추기경님(S. Em. Card. Camillo Camillo Ruini), 그 뒷편에 계신 추기경님은 국무원장인 베르또네 추기경님(S. Em. Card. Tarcisio Bertone. S.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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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이 안셀모 성당에 입장하시자,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며 예식이 시작되었다. 성당 한 쪽에는 베네딕도 회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다른 쪽에는 도미니꼬 회원들이 함께 하였다.

올해는 교황청에서 준비를 많이 하였는지~~, 안셀모 성당과, 사비나 성당뿐만 아니라, 행렬이 지나 갈 거리에 음향시설과 마이크 시설을 하여, 하나의 전례 공간으로 묶어 놓았다. 한 성당에서 노래를 시작하면, 행렬을 보기 위하여 나와 있는 사람들이나, 다른 성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신자들이 함께 노래를 하는 식이었다.

작년과 비교하여 놀라운 기술적 진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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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모 성당에서, 베네딕도 회원들과 도미니꼬 회원들이 함께 행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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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모 성당에서 행렬이 길거리로 나설려 하고 있다. 교황님 앞에서 추기경들이 행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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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터 달라진 것.

밑에 올려 놓은 작년(2007년) 사진과 비교하면 알 수 있겠지만, 교황님의 복식이 달라졌다. 전통적인 로마식 제의라고나 할까!!

또한 작년과 달리, 교황님 옆에 두 분의 추기경님이 함께 교황님을 도와 행렬하였다. 부제급 추기경님들(arcidiac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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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재의 수요일 사진>>

작년에는 부제급 추기경 없이, 부제와 교황청 예절지기가 함께 행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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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렬이 안셀모 수도원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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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는 이 행렬을 보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교황님이 미사를 주례하실 때는, 성당에 입장하기 위하여 입장권이 필요하다. 물론 무료로 배포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교황님 미사에 참석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구하기가 쉽지 않다.

속죄 행렬이지만, 길거리에서도, 성당 안에서도 사람들은 기회를 놓칠새라, 모두 카메라를 꺼내든다. 길 거리에는 경찰과 경호원들이 촘촘히 배치되고, 하늘에는 헬기까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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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사비나 성당>>  행렬이 끝나면 바로 미사가 시작된다. 미사 중에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이 거행된다. <현재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높은 곳은 독서대이다.>

독서대 뒷편으로는 안셀모 성당의 성가대와, 교황님 미사에 봉사하는 성가대가 함께 전례 성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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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를 축복하고는 제일 먼저 교황님 머리에 재를 얹는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

평화신문을 보니, 교황님 머리에 재를 얹는 분은 요제프 톰코 추기경이시라고 한다. 인류복음화성 장관을 역임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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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7년에 교황님으로 부터 머리에 재를 받았다. 안셀모 수도원에 살면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들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교황님으로 부터 성체를 받아 모시기도 한다.


- 교황님 근처에 접근하면 거의 100% 교황청 소속 사진사들에게 찍힌다^^*  나중에 바티칸 안에 있는 사무실에 가면 그 사진들을 확인하고 구입할 수 있다.

- 경호 때문에 그런지, 교황님 앞까지 가기 위해서는 몇 번의 확인 절차를 거친다. 미리 비표가 배부되고, 이것을 가진 사람만 접근할 수 있다.



트라피스트 수녀님들의 호소 2 -평화신문

[이 땅에 평화를] 수도원 주변 곳곳 개발로 몸살

조선소 굉음ㆍ먼지 속에서 어떻게 기도하나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가곡 '가고파'의 노랫말처럼 쪽빛바다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곳. 경남 마산에서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구산면'으로 향하게 된다. 구산면 소재지인 수정리 해안을 만난다. 수정마을은 예로부터 바닷물이 맑고 회 맛이 고소한 물고기가 잘 낚여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자그마하고도 살가운 갯마을이다. 육지 쪽으로 움푹 파고 들어온 수정만 바다는 커다란 호수처럼 잔잔하다. 파도가 거의 없어 그야말로 이름처럼 '수정'(水晶) 같은 바다를 자랑하는 곳이다.
 마을 옆 나지막한 산 중턱에는 관상수도회인 '엄률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회'(원장 장혜경 수녀)가 둥지를 틀고 있다. 그야말로 관상수녀들이 봉쇄를 지키며 은둔과 절대 침묵 속에서 세상의 구원과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조용한 어촌마을이다.

 
▲ 마산시와 STX중공업이 대규모 조선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구산면 수정만 매립지 전경.
380여가구가 거주하는 수정리 마을이 바로 옆 왼쪽에 있고, 앞 쪽에는 맑고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 조선소 들어오면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이처럼 고요하고 평화롭던 시골마을이 요즘 벌집을 쑤셔놓은 듯 시끄럽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마을 앞 매립지에 조선소를 적극 유치하려는 마산시와 환경오염 및 생태계 파괴, 생활터전 상실을 우려하며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08년 2월 3일자 제956호 참조>
 기자가 현장을 찾은 날도 조선기자재 공장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대책위와 트라피스트회 수녀들은 경남도청과 마산시청 앞에서 조선소 유치 결사반대 집회를 벌이고 있었다. 평생 수도원 밖으로 나오지 않고 관상생활을 하는 수녀들이 묵주 대신 마이크를 들고 마을 주민,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도청과 시청 앞에서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수정마을 1000여 명 주민과 트라피스트회 수녀들은 지난해 9월부터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 철제 가림막으로 가려진 매립지 안에서 엄청난 굉음과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진동, 분진이 밤낮으로 계속됐다.
 주민들은 23만㎡ 매립지 안에 쌓여 있는 대형 크레인, 조선기자재들과 선박 블록을 용접하는 불빛을 목격했다. STX중공업이 '부품 물류창고를 짓는다'고 주민들을 안심시키고 아직 매립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조선기자재 생산 시설을 시공한 것이다.
 주민들은 시와 회사 측이 환경영향평가나 공청회 한 번 없이 몰래 환경과 인체에 치명적 위험을 줄 수 있는 대규모 조선소를 건립하려는 은밀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수정마을 주민들은 격분했다. 주민대책위 등은 "매립지 반경 500m 안에 384가구가 거주하는 이곳에 조선소가 들어서면 마을은 엄청난 '오염폭탄'을 맞을 것이 뻔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트라피스트회 장혜경(요세파) 원장 수녀는 "시와 회사 측은 인간 생명과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조선소 건립을 철회하고 합리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트라피스트 수녀회 장혜경 원장 수녀(왼쪽)와 강성숙 수녀, 통영ㆍ거제환경운동연합 장기동(오른쪽)씨가 조선소에서 발생하는 쇳가루와 유독성 페인트 분진, 소음 등으로 인해 심각한 오염피해를 입고 있는 진해시 죽곡동을 찾아 피해실태를 살펴보고 있다.
 
# 주변지역 환경오염 피해 심각 
 
  조선소 선박 제조업은 그 특성상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선박에 대형 분무기로 도장(페인트 칠)을 하는 과정에서 유독성 페인트 분진이 대량으로 배출된다. 또 용접이나 녹을 제거하는 연마 과정에서 발생하는 쇳가루와 미세먼지는 물론 중금속 폐수로 인한 해양오염도 심각하다.
 장혜경 원장 수녀, 통영ㆍ거제환경운동연합 장기동(바오로)씨와 함께 수정리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진해시 죽곡동을 찾았다. 마을 앞바다를 가로막고 있는 STX조선(옛 대동조선)에서는 중장비들이 굉음을 내며 선박건조 작업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매캐한 페인트 냄새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가슴 속까지 왠지 모를 답답함과 통증이 느껴졌다. 공터에 주차돼 있는 차량 표면은 쇳가루와 페인트 분진이 달라붙어 상당히 거칠게 훼손돼 있었다.
 조선소와 10년 넘게 동거해온 죽곡동 90여 가구 250여 명 주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죽곡동 주민대책위 이모씨는 "식탁까지 쇳가루, 페인트 분진이 날아오고, 밤낮 없이 쿵쾅거리는 엄청난 소음으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라며 "분진과 소음 때문에 주민들이 불면증과 신경쇠약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조선소가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있다고 하지만 대규모 산업단지가 아닌 주거지 바로 옆에 조선소를 세운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2월 27일부터 주민들과 단식농성에 들어간 장혜경 수녀는 "수정마을 주민들은 STX조선 본사가 있는 진해 죽곡동처럼 망가지는 것을 절대 원치 않는다"며 "수정만 매립지에 조선소를 건립하려는 계획을 취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진해 죽곡동 뿐 아니라 경남 통영시 봉평동ㆍ도남동, 거제도 등 대형 조선소가 들어선 어촌마을은 모두 죽음의 마을로 변했다.
 
글=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heelen@
[기사원문 보기]
[평화신문  2008.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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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신과 감성을 새롭게 해 주었던 깊은 체험들도, 마치 시간이 지난 빛 바랜 천연색 사진처럼, 내 컴퓨터 하드 디스크 안에 여기 저기 파편화 되어 묵히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내 기도의 벗들에게 사는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또한 내 삶의 기록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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