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수사의 사는 이야기  
Front Page
Tag | Location | Media | Guestbook | Admin   
 
이태리 유학 전날 미사에서^^*

다음 시험을 준비할 며칠 간의 여유가 생겼다고,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아 넘기던 것에 눈이 계속 간다.

책상 서랍 속에 들어 있는 종이 뭉치를 버리던지, 정리하던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쳐박아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결국 저녁 식사 후에, 그 종이들과 마주 앉았다.
대충 살펴보고 내 시야와 내 기억 저편으로  보내 버릴 심상이었다.
 
그 중에 한 장이 눈에 뛴다.
"2006년 1월 3일 본원 미사 중에" 라고 적힌 종이가 한 장 있었다.
유학을 떠나기 전날, 왜관에서의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며, 인사말을 하기 위해 적었던 종이였다.

이 종이를 집어 들고, 망각의 저편에서 다시 내 의식 한 가운데로 그 때의 모든 것들을 꺼집어 내 보았다. "처음처럼" 이라는 말이 늘 신선한 에너지를 우리에게 공급해 주듯이, 예전의 다짐들을 되살려 보기 위해 여기에 옮겨 본다.

==================

저는 "정주"를 주제로 수련논문을 썼습니다.
변화되기 보다는 익숙한 것을 더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주"란 한 곳에 붙박이로 있으면서 모든 것을 너무 익숙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역동적이며, 새로운 활력을 가진 개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떠난다"는 것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합니다.

"떠나라"는 말은 구약과 신약성서에서, 신앙의 길을 걷기 위하여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수도생활을 시작할 때 그러했고, 수도원에 들어온 후 군대에 가기 위해서 공동체를 떠날 때 그러했고, 종신서원과 사제서품이라는 새로운 고개를 넘을 때 그러하였습니다.

내일 공부를 위하여 이탈리아로 출국합니다.

'한 동안 공동체를 떠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떠남이 하느님께 제 자신을 더욱더 자유롭게 내어 맡길 수 있는 시간이 되고, 공동체를 위해서 제 자신을 숙성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형제들과 신자 여러분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006. 1. 3. 본원 미사 중에)


 



오도환 오도 아빠스님 서품 금경축(50년) - 2008.7.6.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사제서품 금경축 상본>>


이틀 전에 독일에 계신 오도 아빠스님으로 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현재의 근황과 함께 7월 6일에 서품 금경축(50년)을 맞이하신다는 말씀과 기념 상본도 들어 있었다.

아빠스님의 일생은 전적으로 선교하는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빠스님의 편지에 의하면, 젊은 시절 선교 잡지를 읽었을 때 사제를 필요로 하는 선교지의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일할 부르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로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항상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파견되었다.


1958년 7월 6일 다른 다섯 분의 수도자와 함께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중에 네 분은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견되었고, 아빠스님과 다른 한 분은 한국에 파견되었다고 한다.

기념 상본에 나와 있는 내용과 아빠스님의 약력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1958. 7. 6. 사제 서품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소속)
1960.        한국으로 선교 파견

1964. 4. 28.  왜관 수도원의 초대 아빠스로 선출
1964. 5. 20.  아빠스로 축성 (예전 사진에 보면, 현 순심 남자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거창한 축성식이 있었다~~)

1971. 2. 24.  수도원장 사임
1972-1982    일본에서 선교사 생활
1982-2002    필리핀 디고스 수도원에서 선교사 생활 (수도원 원장으로 봉사; 7월 13일이 디고스 수도원의 설립 은경축 1983-2008)

2002-2007    인도와 중국의 수도원에 대한 지원
2004년        한국으로 돌아오심
2005-2008    로마 성 밖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파견 (베네딕도회 수도원- 바오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 곳)

2008            독일에서 무릎 수술
2008. 7. 17.   대만에 있는 수녀원 지도 신부로 파견 예정 (편지에 의하면, 아마도 마지막 소임지가 될 것이라 말씀하셨다.)


대만에서도 하느님의 뜻 따라, 자신에게 맡겨진 mission을 잘 수행하시기를 기도드린다. 그리고 건강하시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사제서품 금경축 상본>>



사용자 삽입 이미지

<< 2004년 한국에 돌아오셨을 때, 대구 칠곡에 있는 운전면허 시험장에 가서, 한국 운전 면허증을 발급받았다. 그때만 해도 남은 여생을 한국에서 지내시는구나 생각했었는데, 2005년 1월에 다시 로마에 있는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파견되셨다. 그 곳에서 다양한 언어로 고해 성사를 집전하시며 수도원 일을 도우셨다. 한국 수녀님들도 성사를 보기 위해 많이 방문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7년 11월 한국 주교단이 사도좌 정기 방문(Ad limina)을 하셨을 때, 바오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한국 유학 사제단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였다. 아빠스님은 주교님들을 맞이하여 전례 준비와 수도원 안내 등을 해 주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 내부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왜관 식구들의 기념 촬영>>


사용자 삽입 이미지

<< 2007년 2월 로마를 떠나 독일로 돌아가시기 전에 성 바오로 수도원을 방문하여 뵈올 기회가 있었다. 수도원 이곳 저곳을 상세히 안내해 주셨다. 여기는 수도원의 식당인데, 영국 여왕이 수도원에 기증한 샹델리에가 걸려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도원 내부의 아빠스님 개인 방>>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방문에 붙여져 있던 그림- 문패>>

어떤 중국 신부님이 그려 주었다고 한다.
아빠스님의 한국명 '오도환' 과 독일명 '오도 하아스'(Odo Haas)가 잘 표현되었다.






몬떼 올리베또 수도원에서의 부활 성삼일 전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도원 성당 안에 '프란치스코 로마나' 성녀의 경당이 있다. 그 제대 앞에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 조각상이 항상 모셔져 있었다. 성 금요일 저녁에는 이 상을 제대 앞에 모셔 두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성 금요일 밤. 제대 앞에 흰 천을 걸친 십자가와 예수님 상을 모셔다 놓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 토요일. 부활 성야 미사의 부활 초 축복.
성당 앞 마당에 불을 아주 크게 피워놓았다. 어둠을 뚫고 나오는 "그리스도의 빛"을 생생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사용자 삽입 이미지

18년 동안 아빠스직을 수행하고 계시는 미켈란젤로 아빠스님. 수도원에서 몇 개의 본당도 관할하고 있었다. 이런 아빠스님들을 Abbas Nullius (이태리말 : abate territoriale)라고 한다. 관할 지역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왜관 수도원의 아빠스님 역시 Abbas Nullius 이시다. 그 관할 지역은 북한에 있는 옛 덕원 수도원 지역이다.

이러한 '자치 수도원구'는 작은 교구와도 같은데, 사진 중간에 계시는 분이 그 교구의 총대리를 맡고 계시는 신부님이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활 성야 미사 말미에 계란을 축복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이 봉헌한 빵도 축복한 다음에 신자들이 집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 한 가지 특이했던 것은 살아 있는 '어린 양'을 바구니에 담아서 봉헌하고 축복하였다. 그 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성당 한 쪽에 둔 어린 양이 울어 대는 통에 수도자들이 서로 마주보고 웃곤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활 대축일 미사 전 행렬.

수도원은 네모 나게 회랑이 있고, 그 회랑의 벽에는 성 베네딕도의 생애가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었다. 장엄하게 행렬할 때는, 제의방에서 출발하여 이 회랑을 한 바퀴 돌고 성당으로 입장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촬영을 위해서 조심스럽게 아빠스님께 허락을 청했다. 흔쾌히 승락을 해 주셨다. 그리고 원장 신부님과 다른 형제들에게도 휴게 시간에 이야기를 하였다.

어떤 신부님은 부활절에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방문하시는데, 내가 찍은 사진을 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하셨다. 찍은 모든 사진은 휴게실에 있는 공동 컴퓨터 속에 넣어 두었다. 흰색 수도자들(몬떼 올리베또의) 사이에서 검은 수도복을 입은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이 방문한 신자들에게도 낯선 광경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따뜻한 환대를 베풀어 준 몬떼 올리베또의 형제들에게 감사하며...


사용자 삽입 이미지



BLOG main image
나의 정신과 감성을 새롭게 해 주었던 깊은 체험들도, 마치 시간이 지난 빛 바랜 천연색 사진처럼, 내 컴퓨터 하드 디스크 안에 여기 저기 파편화 되어 묵히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내 기도의 벗들에게 사는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또한 내 삶의 기록도 되겠지요.
 Notic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34)
수도원들 (15)
역사의 그 자리 (3)
일상의 주변들 (13)
사람의 향기 (2)
(1)
 TAGS
선교사 이태리 재의수요일 St.Ottilien 왜관수도원 상트 오틸리엔 수녀원 수도원 베네딕도회 La verna 백주년 몬떼올리베또 Sankt Ottilien 매립지 선교 덕원수도원 뮌헨 아레쪼 cella 마산 이탈리아 사순절 분도회 교황청 교황 Sant'Anselmo 조선소 토스카나 로무알도 Ottilien 올리베따노 은수생활 트라피스트 오틸리엔 아빠스 Monte Oliveto 까말돌리 은수처 Camaldoli 베네딕도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Entries
 Recent Comments
 Recent Trackbacks
 Archive
 Link Site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자유게시판
평화신문
가톨릭 신문
pacom.tistory.com
인 끌레멘스 신부
이탈리아어-한글 사전 Anselmus
연합뉴스
한RSS
CEI-이태리 주교회의
교황청 성직자성
로마 교구 소식
 Visitor Statistics
Total :
Today :
Yesterday :

Skype Me™!
위 버튼을 누르면 저에게 전화를 걸 수 있습니다.